
서류 더미를 마주했을 때의 기분
거실 한가운데에 쌓아둔 서류 뭉치를 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여기까지 왔을까. 사실 처음에는 신용회복위원회 같은 곳에서 대충 알아보고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닥쳐보니 상황은 훨씬 복잡했다. 내 소득과 지출을 법원이 정한 기준에 맞춰 하나하나 엑셀로 정리하는데, 내 삶의 궤적이 마치 숫자 몇 개로 치환되는 기분이랄까. 부산개인회생을 검색해보고 여러 법무법인 이름을 추려내던 그날 밤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떤 곳은 너무 비싼 수임료를 불렀고, 어떤 곳은 전화 상담만으로도 다 해결될 것처럼 말했다. 그 괴리감 때문에 한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노트북 앞에서 멍하니 화면만 바라봤던 것 같다.
무리한 변제 계획이 주는 압박감
주변에서는 무조건 변제율을 낮게 잡아야 한다고들 했다. 나 역시 그랬다. 탕감률이 높아야 이 지옥 같은 시간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도산전문 변호사님들은 오히려 반대였다. 무리하게 낮은 변제금을 써내서 인가를 받아봤자, 결국 중간에 납입을 못 해서 폐지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데 솔직히 좀 허탈했다. 성실하게 살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구조적인 문제가 내 발목을 잡고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는 게 참 무거웠다. 월 변제금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식비나 교통비를 쪼개는 내 모습을 보면서, 이게 과연 정상적인 삶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대구회생법원의 창구 풍경
법원 서류를 떼러 갔을 때 본 풍경은 생각보다 건조했다. 다들 비슷비슷한 표정으로 서류 봉투를 들고 서 있었다. 누구 하나 소리 내어 울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냥 조용히 자기 차례를 기다릴 뿐이었다. 대구회생법원 근처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내가 왜 채권추심 시간에 그렇게 벌벌 떨었나 싶더라. 그 무서웠던 독촉 전화들이 이제는 그냥 스팸 문자처럼 느껴지는 날이 오긴 하려나. 물론 지금도 매달 변제금 납입일이 다가오면 통장 잔고를 확인하는 손이 떨리긴 한다. 3년 혹은 5년이라는 시간은 참 길고도 짧은 것 같다.
똑생이나 신용도우미 같은 서비스들
최근에는 모바일 앱으로 신용도우미 같은 걸 써보기도 했다. 이것저것 눌러보면서 내 채무 상태를 파악하는 게 도움은 되더라. 예전에 똑생 같은 곳에서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 나중에 변제계획을 수정할 때 비용이 얼마나 더 들지 걱정하는 글들을 자주 본다. 나도 비슷한 고민을 했었다. 추가로 비용을 들여서 전문가에게 맡길지, 아니면 그냥 내 선에서 최대한 버텨볼지 말이다. 결국엔 그냥 혼자 끙끙 앓다가 다시 전문가에게 연락하는 나를 발견했다. 이게 맞는 방향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는 말이 요즘따라 참 뼈저리게 다가온다.
여전히 남은 미해결의 감각
모든 절차가 끝난다고 해서 내 삶이 드라마틱하게 변할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나는 매달 들어오는 소득과 나가는 지출을 계산하며 하루하루를 보낼 것이다. 채무가 다 탕감되고 나면, 그때는 정말 웃을 수 있을까. 그냥 빚이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을 것 같은데, 지금은 그마저도 막연한 희망사항처럼 느껴진다. 재신청을 하러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혹시 나중에 같은 자리에 서 있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여전하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밤에 잠이 잘 안 오기도 한다. 뭐, 그래도 어쩌겠나. 이미 시작한 일인데 끝까지 가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