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 뭉치를 들고 법원 앞을 서성거린 날

서류 뭉치를 들고 법원 앞을 서성거린 날

서류 봉투의 무게가 유독 무겁게 느껴졌던 아침

지하철을 타고 서울 회생법원 근처에 내렸는데, 생각보다 날씨가 너무 화창해서 괜히 더 기분이 묘했다. 손에는 법무사 사무실에서 준비해준 서류 봉투가 들려 있었다. 사실 그전까지는 이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싶었다. 그냥 몇 장의 서류를 제출하고 나면 뭔가 마법처럼 신용 등급이 회복되고, 독촉 전화가 뚝 끊길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법원 건물을 눈앞에 두고 서 있으니 현실감이 훅 들어왔다. 그 묵직한 서류 봉투 안에는 지난 몇 년간 내가 저질렀던 실수들과 그 대가들이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쓴 서류인데도 내가 읽기 싫은 내용들이 가득했다.

상담실에서 들은 예상치 못한 수임료 이야기

처음 법무사 사무실을 찾았을 때는 수임료가 대략 200만 원에서 300만 원 사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일단 덜컥 겁부터 났다. 지금 당장 빚 때문에 숨이 막히는 상황인데, 그 큰돈을 어디서 구하나 싶어서. 그런데 주위 사람들은 오히려 그게 싼 편이라고 하니 참 아이러니했다. 어떤 곳은 변호사 사무실이라고 해서 조금 더 비싸게 부르기도 하고, 또 어떤 곳은 정말 저렴하게 해주겠다고 호객을 하는데 그게 더 불안했다. 결국 적당히 평이 나쁘지 않은 곳을 골랐는데, 상담해주는 사람이 나한테 ‘채무 변제율’이 얼마나 나올 것 같냐고 물었을 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저 매달 들어오는 월급에서 최저생계비 빼고 남은 돈을 다 넣으면 된다는, 아주 단순하고도 무서운 공식만 머릿속에 맴돌 뿐이었다.

지방세 체납이라는 뜻밖의 걸림돌

서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짜증 났던 건 생각지도 못한 지방세 체납이었다. 개인회생을 신청하려면 자산이랑 부채 목록을 싹 다 정리해야 하는데, 내가 사는 동네 구청에서 날아온 고지서를 무시하고 살았던 게 문제였다. 이게 단순히 빚만 갚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 세금 같은 공적인 의무도 다 챙겨야 한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세금은 파산이나 회생으로도 어떻게 하기 까다로운 부분이 있다고 해서, 결국 급하게 주변에 돈을 빌려 세금부터 정리했다. 빚을 갚으려고 빚을 만드는 이 기묘한 상황이 반복되는 게 정말 지긋지긋했다. 도대체 언제쯤이면 이런 굴레에서 벗어나서, 그냥 남들처럼 월급 받으면 저축하고 사는 평범한 일상을 살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당장 다음 달 변제금을 어떻게 맞출지 고민하는 나 자신이 참 초라했다.

법원 주변의 풍경과 묘한 이질감

법원 앞에는 비슷한 고민을 안고 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다들 표정이 비슷했다. 뭔가 지쳐 있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 지긋지긋한 독촉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근처 식당에서 8,000원짜리 김치찌개를 먹었는데, 식당 아주머니가 나를 보며 ‘요즘은 다들 힘들지’라고 무심하게 던진 말이 왜 그렇게 가슴에 박혔는지 모르겠다. 나는 지금 개인회생을 진행하고 있지만, 주변의 누군가는 파산 면책을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세상 참 복잡하게 돌아간다는 기분이 들었다. 빚이라는 게 참 무서운 게, 한 번 발을 들이면 늪처럼 빠져나오기가 너무 힘들다. 특히 고금리 대출로 돌려막기를 하던 시절의 나를 생각하면 지금도 식은땀이 난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함

접수를 끝내고 나오니 해가 조금씩 지고 있었다. 이제 시작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솔직히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걷는 기분이다. 3년인가 5년인가, 그동안 매달 정해진 날짜에 돈을 입금해야 한다고 한다. 그 기간 동안 나는 무사히 이 생활을 견딜 수 있을까. 갑자기 큰돈이 나갈 일이 생기거나, 혹은 직장에 변동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지? 이런 쓸데없는 걱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물론 지금은 이 선택이 최선이라고 믿으려 노력 중이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불안함이 가시질 않는다. 집에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이 멍하니 휴대폰을 보는 모습을 보는데, 저 사람들도 다들 나처럼 각자의 말 못 할 고민들을 하나씩은 안고 살아가고 있는 걸까. 어쩌면 나만 이렇게 유난을 떨며 사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 2
  • 지방세 체납 때문에 급하게 돈을 빌린 경험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복잡하네요. 개인회생 과정이 얼마나 꼼꼼하게 준비되어야 하는지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 고지서 무시했던 지방세 때문에 그런 상황이 벌어진 것도 안타깝네요. 파산이나 회생은 정말 복잡한 문제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