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갑자기 아랫집에서 인터폰이 울렸다. 천장에 물 얼룩이 생겼다며 한 번 와서 봐달라는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그냥 가벼운 해프닝이겠거니 싶었다. 3년 전 이 아파트에 들어올 때만 해도 내부 인테리어를 싹 고쳤으니까, 배관 쪽은 크게 문제없을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게 화근이었다. 막상 내려가 보니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했다. 거실 천장 한가운데에 제법 큰 얼룩이 져 있었고, 손을 대보니 축축한 기운이 확실히 느껴졌다. 아랫집 주인은 꽤 당황한 기색이었고, 나도 사람인지라 일단은 미안한 마음이 앞서서 어떻게든 해결해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올라왔다. 그런데 막상 집에 돌아와 보니 덜컥 겁이 났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누수인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수 탐지 업체를 부르기까지의 과정
처음에는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했다. 공용 부분 배관 문제면 관리실에서 해결해줄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관리실 직원은 퉁명스럽게도 세대 내부 문제일 가능성이 높으니 직접 업체를 불러야 한다고 했다. 결국 인터넷으로 ‘강남 누수 탐지’ 같은 검색어를 쳐가며 급하게 업체를 찾았다. 이름만 들으면 다 알 만한 곳보다는 그냥 블로그 후기가 좀 있는 적당한 업체를 골랐다. 출장비만 해도 10만 원이 기본이고, 장비를 사용해서 누수 지점을 찾으면 50만 원에서 많게는 100만 원까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머리가 아파졌다. 평일 오후에 반차를 내고 겨우 시간을 맞춰 기사님을 불렀는데, 현관문 앞에 장비 가방을 내려놓는 모습만 봐도 심장이 뛰었다. 이게 다 얼마짜리 고생인가 싶어서.
일상배상책임보험의 현실적인 벽
누수 원인을 찾고 나니 이제는 보험이 문제였다. 다행히 가입해둔 실손보험에 ‘일상생활배상책임’ 특약이 있다는 게 생각났다. 이거면 해결되겠지 싶어 기쁜 마음으로 보험사에 접수를 했다. 그런데 이게 생각처럼 술술 풀리지 않았다. 상담원은 내 편이 아니라 마치 깐깐한 심사위원처럼 굴었다. 공사 비용이 300만 원 정도 나왔는데, 건물 자체의 노후화로 인한 하자인지 아니면 내 과실인지 증빙해야 한다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내가 전문가도 아닌데 어떻게 공사 범위가 100% 내 책임인지 입증하라는 건지, 통화하다가 열이 받아서 중간에 말을 끊을 뻔했다. 보험이라는 게 원래 이런 건가 싶기도 하고, 어떤 날은 상담원에게 화를 내고 어떤 날은 비굴하게 서류를 보내달라고 매달리는 내 모습이 참 초라했다.
공사는 끝났지만 남은 찝찝함
결국 공사는 끝났다. 욕실 바닥 아래 배관이 미세하게 갈라져 있었던 게 문제였다고 했다. 공사를 하는 3일 동안 우리 집 욕실을 쓸 수 없어서 근처 헬스장 샤워실을 이용했다. 저녁마다 운동 가방을 메고 헬스장에 가서 씻고 나오는데, 도대체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나 싶어 허탈했다. 보험사는 결국 공사비의 일부만 지급하겠다고 통보해왔다. 근본적인 원인이 우리 집 노후 배관이라 100% 보상은 어렵다는 논리였다. 금감원에 민원을 넣어볼까도 생각했지만, 그거 준비하는 시간에 그냥 내 돈 좀 더 쓰고 끝내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이게 맞는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랫집과는 일단 좋게 마무리가 됐지만,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낡은 아파트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
우리 집은 준공된 지 20년이 넘은 아파트다. 이런저런 문제가 터지는 게 이상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막상 내가 당사자가 되어 보니, 집이라는 게 단순히 사는 공간이 아니라 끊임없이 유지 보수를 요구하는 거대한 기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는 또 관리실에서 배관 노후화 점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그걸 보고 나니 괜히 화장실 변기 물 내리는 소리도 예민하게 들린다. 어딘가 또 새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번 누수 사건으로 내 통장에서는 대략 200만 원 정도의 돈이 증발했다. 큰돈이라면 큰돈이고, 아니면 아닌 돈인데 마음 한구석이 계속 무겁다. 누가 이런 건 미리 알려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이런 일상적인 재난들이 너무 지겹게 느껴지는 밤이다.
3년 전에 안일하게 생각했던 부분에 결국 문제가 생기다니, 정말 답답하네요. 지금부터라도 누수 발생 시 주변 배관 상태를 꼼꼼히 확인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