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서류 뭉치 들고 대구까지 다녀온 날

법원 서류 뭉치 들고 대구까지 다녀온 날

서류 떼러 가기 전의 막막함

아침 일찍 눈을 뜨는데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뉴스에서는 뭐 국민연금이 몇백 조가 증발했네 어쩌네 떠들고 있는데, 당장 내 통장에 꽂힌 채권압류 딱지 떼는 게 더 급했다. 벌써 몇 달째인지 모르겠다. 처음엔 그냥 내가 좀 아껴 쓰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꼬이고 꼬여서 이제는 혼자서는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지경까지 왔다. 인터넷으로 채무증명서 발급받으려고 며칠을 씨름했는데, 결국 공인인증서랑 보안 프로그램이랑 싸우다가 포기하고 그냥 직접 움직이기로 했다.

대구까지 내려간 길

대구에 있는 신용회복위원회 지부까지 가는 길이 왜 그렇게 멀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KTX 타는 비용 4만 5천 원도 사실 지금 형편에는 조금 아까웠지만, 등기 우편으로 오가는 시간 기다리다가는 속이 타서 죽을 것 같았다. 버스에서 내려서 걷는데 날씨는 또 왜 이렇게 더운지.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골목을 돌고 돌았다. 사실 개인회생이니 파산이니 하는 단어들이 처음에는 남의 일처럼 들렸는데, 막상 내가 그 서류를 품에 안고 걷고 있으려니 기분이 참 묘하더라.

상담 창구에서 느낀 묘한 긴장감

창구에 앉은 분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내 뒤로도 몇 분이 더 앉아 계셨는데, 다들 하나같이 바닥만 보거나 손에 쥔 서류를 몇 번씩 확인하고 있었다. 상담사분이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내가 기억 못 하는 것들도 꽤 많았다. 채무가 언제 어디서 얼마가 생겼는지, 정확한 이자율은 얼마인지. 나는 그냥 ‘빨리 해결만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 거기는 그런 감정보다는 정확한 숫자가 중요한 곳이니까. 내가 대답을 못 하고 쭈뼛거리니까 옆에서 한숨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고, 왠지 모르게 자꾸 위축이 됐다.

채권자 입장은 생각도 못 했는데

거기 다녀오고 나서 인터넷 카페 같은 곳을 좀 찾아봤다. 어떤 사람은 1,200만 원 빌려준 채권자인데 자기 돈 다 날리는 거냐고 묻는 글도 있더라. 나도 빚진 입장이지만, 사실 빌려준 사람 마음도 이해는 간다. 돈이 묶여서 발을 동동 구르는 건 결국 다 똑같은 사람 사는 모습인가 싶고. 대리인제도 같은 걸 이용할지 말지 고민도 되는데, 수임료 100만 원~200만 원이 또 당장은 큰 벽이다. 당장 내 생활비도 간당간당한데 이 돈을 어디서 마련해야 하나 싶어 머리가 지끈거린다.

결국 다시 제자리인 기분

오늘 상담받고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역 자판기에서 1,200원짜리 이온 음료를 하나 뽑아 마셨다. 다 해결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허기가 지던지. 파산 폐지 결정이 났네 어쩌네 하는 무거운 단어들을 뇌에서 좀 지우고 싶다. 내일 당장 통장 가압류 풀리는 것도 아니고, 당분간은 계속 이 압박감을 안고 살아야 한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창밖을 보는데 그냥 아무 생각도 안 났다. 그냥 빨리 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아니, 시간이 지나도 딱히 달라질 건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댓글 4
  • 등기 우편으로 기다리는 시간 때문에 속이 타는 것 같았어요. 채권자분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시는군요.

  • 서류를 본 적이 없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특히 이자율 관련해서요.

  • 서류를 보면서 그 분들이 얼마나 답답했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쓰입니다. 저도 비슷한 상황이라면 더 초조할 것 같아요.

  • 채권자 입장도 한번쯤 생각해 보면, 얼마나 답답할지 상상이 안 나네요. 특히 정확한 금액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