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 뭉치를 들고 법원을 왔다 갔다 하던 시간들

서류 뭉치를 들고 법원을 왔다 갔다 하던 시간들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정말로 더 이상 버티는 게 의미가 있을까. 매달 들어오는 월급은 통장을 스쳐 지나가는 게 아니라, 그냥 로그인했다가 로그아웃하는 수준이었다. 카드값 돌려막기가 일상이 된 지도 꽤 오래였고, 채권 추심 전화는 이제 벨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지경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혼자 해결해보겠다고 이것저것 검색도 해보고, 무슨 금융 어플을 깔아서 빚을 통합해 보려고도 했다. 그런데 그게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무작정 찾아갔던 법률구조공단 사무실

결국 용기를 내서 대한법률구조공단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 예약을 잡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대기자가 많다는 안내를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르겠다. 어렵게 연결된 상담원에게 내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더라. 그래도 상담원은 사무적인 말투로 이것저것 물어봤다. 어디가 아픈지, 왜 이렇게 빚이 늘어났는지, 지금 당장 가용 소득이 얼마인지. 사실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 상담을 마치고 나오면서 받았던 그 무거운 서류 봉투의 무게가 아직도 생생하다. 상담료는 거의 없었지만, 그 서류를 작성하는 과정이 나한테는 수백만 원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개인회생과 파산 사이에서 고민하던 밤

회생을 할지 파산을 할지 결정하는 게 참 애매했다. 소득이 있긴 한데, 그 소득으로 생활비를 빼고 나면 변제금을 낼 여력이 거의 없었다. 법원에서는 소득이 있으면 웬만하면 회생으로 가라고 권한다고 들었다. 파산은 진짜 마지막 카드 같은 거라 조건이 까다롭다고 했다. 7년 전에 파산 면책을 받았던 지인이 있어서 물어봤는데, 그 사람은 자기가 파산했던 과정을 무슨 무용담처럼 이야기했다. 그런데 나는 그게 무용담이 아니라 그냥 내 인생의 낙인처럼 느껴져서 차마 웃을 수가 없었다. 서류에 적어야 할 ‘파산에 이르게 된 경위’라는 칸을 채울 때, 내가 왜 이렇게까지 망가졌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게 너무 괴로웠다.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던 채무확인서 발급

어디 어디에 빚이 있는지 정리하는 것도 일이었다. 채무확인서를 떼려고 각 금융사에 연락하는데, 상담원들이 내 채무 상태를 알고 퉁명스럽게 대하는 것 같아 매번 전화를 끊고 한숨을 푹 쉬었다. 심지어 오래전 대부업체에서 빌린 돈은 연락처조차 불분명했다. 신용회복위원회 사이트를 들어가 봐도 내 모든 빚이 한눈에 딱 들어오는 것도 아니었다. 어떤 건 잊고 있다가 갑자기 압류 통지서가 날아와서 놀란 적도 있었다. 그때 느낀 그 서늘함은 정말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거다. 몇 달 동안 매일같이 등기 우편물을 확인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법원 보정 권고에 막혔던 순간들

서류를 제출하고 나면 끝인 줄 알았다. 그런데 법원에서 보정 권고라는 게 날아왔다. 내가 제출한 서류가 부족하다는 거다. 재산 목록에서 누락된 게 있느니, 통장 입출금 내역을 다시 제출하라느니. 심지어 개인사업을 잠깐 했던 적이 있는데, 상업장부를 제대로 작성 안 했다고 꼬투리를 잡히는 게 아닐까 걱정되어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변호사 사무실을 통하면 편하겠지만, 그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결국 내가 직접 서류를 챙겨야 했다. 프린터 잉크가 떨어져서 편의점까지 뛰어갔던 그 밤이 왜 이렇게 기억에 남는지 모르겠다. 10만 원, 20만 원 아껴보겠다고 낑낑대던 그 모습이 지금 생각하면 참 서글프다.

조금씩 멈춰가는 독촉 전화의 소리

최근에는 새도약기금 같은 곳에서 장기 연체 채권을 매입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혹시나 내 빚도 포함될까 싶어 기대를 하기도 했는데, 현실은 그렇게 드라마틱하지 않았다. 그래도 확실히 예전보다 독촉 전화는 줄었다. 빚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법적 절차를 밟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금은 마음 편히 잠들 수 있는 날이 생겼다. 물론 여전히 매달 갚아야 할 돈에 대해 불안함은 남아 있다. 앞으로 몇 년을 더 이렇게 살아야 할지, 중간에 실직이라도 하면 어떻게 될지. 주변 사람들은 이제 그만 잊고 새로 시작하라고 하지만, 내 통장에 찍히는 매달의 빚 상환 내역을 보면 그게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댓글 4
  • 채무확인서 받는 과정이 얼마나 번거로운지 알 것 같아요. 특히 오래된 부채를 찾을 때, 연락처가 없는 경우가 많아서 정말 답답하죠.

  • 채무 상담을 통해 얻은 정보가 단순히 수치 이상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파산 경험에 대한 지인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네요.

  • 재산 목록에서 누락된 게 있다는 게, 생각보다 작은 실수 하나 때문에 일이 이렇게 복잡해질 줄 몰랐네요.

  • 서류 보정 때문에 밤새워진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시간 낭비라는 생각에 속상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