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류 더미와 마주했던 그날의 오후
거실 바닥에 흩어진 서류들을 보면서 이게 정말 내 인생의 전부를 증명하는 종이들인가 싶어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책상 위에는 개인회생 사건번호가 적힌 안내문과 이런저런 금융기관에서 날아온 독촉장들이 뒤섞여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혼자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인터넷에서 개인회생 신청자격을 몇 번이고 검색하고, 법무사 사무실 몇 군데를 기웃거리며 상담료 5만 원, 10만 원을 내던 때가 생각난다. 어디는 비용이 너무 비싸고, 어디는 너무 친절해서 오히려 더 의심이 갔다. 결국 적당한 곳을 골라 맡기긴 했는데,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묘한 비참함은 어쩔 수가 없더라.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자괴감이 들다가도, 당장 다음 달 카드값을 막지 못하면 신용불량자 조회가 두려워지는 현실이 더 급했으니까.
빚의 무게가 피부로 느껴지던 순간들
요즘 뉴스를 보면 2030 세대의 파산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처음엔 남 일인 줄 알았다. 코인이다 주식이다 소문 들리는 대로 따라갔다가 빚만 쌓였던 건데, 이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건 순식간이더라. 처음에는 천만 원 단위였던 게 어느새 6천만 원이 넘어가고, 이자가 이자를 낳는 구조가 눈에 보이는데도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밤마다 울리는 문자는 공포였다. 법률 사무소에 전화해서 “비용이 얼마나 들까요?”라고 물어볼 때마다 들려오는 천차만별의 수임료 안내가 나를 더 지치게 했다. 어떤 곳은 200만 원을 불렀고, 어떤 곳은 150만 원에 분할 납부가 가능하다고 했다. 이 돈조차 없어서 쩔쩔매는 사람한테 수백만 원을 요구하는 게 당연한 과정이라니, 참 씁쓸했다.
법원에서의 기억과 기약 없는 기다림
법원에 사건이 접수되고 나서 한동안은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사건번호가 나오고 나면 끝인 줄 알았는데, 그다음부터는 끈기 있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서류 보완하라는 연락을 받을 때마다 식은땀이 났다. 내가 빼먹은 게 있는 건지, 아니면 또 어디서 새로운 채무가 튀어나오는 건 아닌지 불안해서 밤잠을 설쳤다. 변호사 사무실 직원은 “보통 이 정도 걸립니다”라고 말하지만, 그 ‘보통’의 기간이 나에게는 1년처럼 느껴졌다. 중간에 미납 회차가 생길까 봐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습관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았다.
주변의 시선과 혼자 남은 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주변 사람들이었다. 다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일상을 보내는데 나만 벼랑 끝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 친구들이 여행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입을 닫아야 했다. 사실은 법원 서류 정리하느라 연차를 썼다는 말은 죽어도 못 하겠더라. 나중에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고, 그냥 다 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가도 다시 정신을 차리고 미납 회차를 계산해본다. 5년이면 길다는데, 지금 벌써 몇 년째인지 세어보는 것도 이젠 귀찮다. 그냥 오늘 하루만 무사히 넘기자, 그런 생각뿐이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들
아직도 가끔은 신용불량자 조회를 해본다. 습관이다. 검색창에 단어를 치는 손이 떨리지만, 결과를 확인하고 나서야 겨우 안심한다. 개인회생이나 파산 절차가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시작이라고들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그저 매달 들어오는 월급의 절반 이상을 떼어 보내며 3~5년을 버텨야 하는 고통스러운 인내의 시간일 뿐이다. 누군가는 빚이 늘어난 이유가 성실하지 않아서라고 손가락질하겠지만, 직접 겪어본 사람들은 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어서 몸부림치다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지를 말이다. 끝이 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안개가 낀 것 같은 이 기분은 대체 언제쯤 끝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