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류 더미가 쌓이기 시작할 때
거실 한가운데에 서류 봉투를 쏟아놓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걸 다 정리하면 뭐가 달라지긴 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섞여서 기분이 참 묘했다. 인터넷에서 신용회복위원회사이버 창구를 몇 번이나 들락거렸는지 모른다. 처음에 워크아웃 조건이 된다고 해서 조금 안도했다가, 또 막상 채권자들 목록을 뽑아보니 이게 생각보다 규모가 커서 혼자 감당이 될까 싶어 밤잠을 설친 게 벌써 몇 달 전 일이다. 주변에서는 법무사 사무실에 그냥 다 맡기라고 하는데, 수임료가 적게는 150만 원에서 많게는 300만 원까지 부르니 그것도 참 만만치 않은 금액이었다. 결국엔 내가 직접 부딪혀보겠다고 사서 고생을 시작한 셈인데, 이게 잘하는 짓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법원 근처에서 느낀 이상한 기분
서울회생법원에 처음 간 날, 건물이 참 크고 위압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거기를 드나드는 사람들이 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위로를 받아야 할지, 아니면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힘든 상황이라는 것에 절망해야 할지 헷갈렸다. 법원 앞에서 서류를 챙겨 나오는데, 갑자기 예전에 뉴스에서 보던 기업들의 워크아웃이나 회생절차 기사들이 떠올랐다. 중앙그룹이나 어떤 기업들이 채권 문제로 휘청거릴 때 사람들은 그저 경제 기사로 읽었겠지만, 지금 내 손에 들린 이 종이 뭉치들도 누군가에게는 꽤 무거운 무게겠지. 그날따라 날씨는 왜 이렇게 좋았는지, 파란 하늘을 보면서 걷는데 내가 가진 빚의 무게랑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라 더 속이 쓰렸던 것 같다.
통장 압류라는 현실적인 공포
가장 무서운 건 역시 통장 압류였다. 월급날이 다가오면 혹시나 내 계좌가 묶이지는 않을까, 갑자기 사용 중인 카드가 정지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매일같이 모바일 뱅킹을 확인했다. 사실 이게 참 불필요한 행동이라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습관처럼 앱을 켜서 잔액을 확인하는 게 몸에 배어버렸다. 신용회복위원회 상담원과 통화할 때 ‘금지명령’ 같은 용어를 듣게 되었는데, 법원에서 이게 받아들여지면 독촉이나 압류 걱정을 좀 덜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신청하고 나니 법원에서 결정을 내려주기까지의 그 대기 시간이 정말 피를 말리는 기분이었다. 길게는 한 달이 넘게 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냥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다는 게 얼마나 답답했는지 모른다.
혼자서 준비하는 과정의 고충
법무사 없이 혼자 해보겠다고 마음먹은 건 순전히 돈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서류를 준비하다 보면 하나씩 꼭 실수를 한다. 재산 목록을 적는데 이게 정말 내 재산으로 잡히는 건지, 아니면 제외되는 건지 헷갈려서 구청이랑 동사무소 민원실을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는지 모른다. 가끔은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냥 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친구들에게 말도 못 하고, 부모님께는 더더욱 비밀로 해야 하니까 혼자 끙끙 앓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의 병만 깊어지는 느낌이었다. 채권자 명단을 정리하다가 내가 예전에 뭣도 모르고 카드론을 돌려막던 기억이 떠올랐는데, 그때 왜 그랬을까 싶어 스스로를 자책하는 밤이 늘어갔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들
오늘도 서류를 보충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꼼꼼히 챙겼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담당자가 요구하는 자료들은 또 달랐다. ‘이걸 왜 또 내야 하지’ 싶어서 투덜거리면서도 결국은 다시 서류를 떼러 가야 한다. 개인회생이든 워크아웃이든, 끝이 나기는 할까. 분명 시간이 지나면 다 정리가 될 거라고 다들 말하지만, 당장 눈앞의 현실은 여전히 뻑뻑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이걸 다 견뎌내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건지 가끔 궁금하다. 어쩌면 이 과정 자체가 하나의 긴 통과의례 같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저 빨리 내 이름으로 된 통장을 마음 편히 쓰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다음 주에 다시 법원에 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피곤이 몰려온다.
카드론 때문에 그때 얼마나 답답했을지… 지금 생각하면 정말 속상하네요.
카드론 때문에 옛 기억 떠올리면서 끙끙 앓는 모습, 정말 공감돼요. 저도 비슷한 경험 때문에 숨쉬기 힘들었던 적이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