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아웃이 안 된다고 해서 결국 법률사무소로 발길을 돌렸던 날

워크아웃이 안 된다고 해서 결국 법률사무소로 발길을 돌렸던 날

신용회복위원회 마포지부에서 워크아웃 자격이 안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부터 법원에 서류를 넣고 개인회생을 할 생각은 없었다. 아무래도 법원 단계로 가면 비용도 많이 들고 절차도 복잡하다는 이야기를 워낙 많이 들어서였다. 그래서 어떻게든 신용회복위원회 단계에서 해결해 보려고 마포지부를 방문했었다. 평일 아침 일찍 갔는데도 대기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고 한 시간 정도 기다려서 상담을 받았다. 내 상황은 실직한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기존에 쓰던 카드론이랑 현서비스가 밀리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상담사분에게 개인워크아웃조건이나 신용회복조건에 대해 물어봤는데, 당장 연체 기간이 90일을 넘지 않았고 확실한 소득 증빙이 어려운 무직 상태에 가까워서 지금 당장 워크아웃을 진행하기는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자가 감면되는 개인회생워크아웃 연계 제도도 알아봤지만 결국 연체 기간을 더 채우거나 확실한 직장을 구해야만 진행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나니 앞이 캄캄해졌다. 신용정보원에 연체정보공유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독촉 전화를 어떻게 버텨야 할지 막막했고, 결국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브로커 사기 걱정 속에 법률사무소를 고르고 수임료를 쪼개 내던 과정

인터넷으로 검색을 시작하면서 가장 겁났던 부분은 개인회생사기 관련 글들이었다. 돈만 받고 제대로 서류 처리를 안 해주거나 도중에 사무실이 없어졌다는 사연들이 꽤 보여서 아무 곳에나 연락하기가 꺼려졌다. 게다가 수임료도 한 번에 내기에는 너무 큰 부담이었다. 여러 곳에 전화를 돌려보다가 서초동 법원 근처에 있는 태율 법률사무소라는 곳을 알게 되었고, 전화를 통해 일차적으로 상담을 받았다. 다행히 이곳은 개인회생수임료분납이 가능하다고 해서 조금은 숨통이 트였다. 총 수임료가 송달료와 인지대를 포함해 약 180만 원 정도 나왔는데, 이걸 4개월 동안 나누어 내기로 하고 계약을 진행했다. 매달 45만 원씩 나가는 것도 당장 수입이 불안정했던 나에게는 큰 돈이었지만, 매일같이 걸려오는 카드사의 독촉 전화를 멈추기 위해 금지명령을 빨리 받아야만 했기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무직 기간과 불규칙한 프리랜서 소득 때문에 꼬여버린 소명 자료 준비

법원에 서류를 접수하고 나면 바로 끝날 줄 알았는데 진짜 골치 아픈 일은 보정명령이 나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에 완전히 고정된 직장이 아니라 임시로 배달 대행과 지인의 보험 대리점에서 소액의 수수료를 받는 보험설계사개인회생 형태의 모호한 소득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법원에서는 무직자개인회생 신청자나 불규칙한 소득자에 대해 소득의 투명성을 매우 까다롭게 검증했다. 지난 1년 동안 내 명의로 된 모든 은행 통장의 거래 내역을 엑셀로 내려받아서 10만 원 이상 입출금된 내역에 대해 일일이 사용처를 적어 내라고 했다. 집에는 프린터도 없어서 동네 PC방에 가서 수십 장짜리 거래 내역서를 뽑아오는데 스스로가 참 한심하게 느껴졌다. 지인에게 빌려준 돈인지, 생활비로 쓴 건지 증명할 수 없는 거래 내역이 나올 때마다 법률사무소 담당자에게 구구절절 해명 톡을 보내야 했다. 서류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면 기각될 수 있다는 압박감 때문에 밤에 잠도 제대로 오지 않았다.

법원에서 내려온 조건부인가 결정과 매년 소득을 신고해야 하는 번거로움

접수한 지 거의 8개월 만에 결정이 났는데 깔끔하게 통과된 것이 아니라 개인회생조건부인가 결정이 떨어졌다. 소득이 불규칙하고 최근 채무 비율이 높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조건부인가를 받게 되면 매년 회생위원이 지정한 시기에 전년도 원천징수영수증과 소득금액증명원, 그리고 통장 거래 내역을 제출해서 소득 변동이 없는지 법원에 직접 신고해야 한다. 만약 소득이 이전보다 늘어났다면 매달 내야 하는 변제금도 그만큼 상향 조정된다는 의미였다. 당시 결정된 내 개인회생변제율은 원금 기준 약 45% 정도였는데, 소득이 조금이라도 오르면 이 변제율이 올라갈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 놓고 일을 더 열심히 해서 돈을 많이 벌기도 애매한 기형적인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 아니라 법원의 감시 아래 36개월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꽤나 무겁게 다가왔다.

변제금을 납부하며 통장 잔고를 볼 때마다 밀려오는 현실적인 제약들

지금은 매달 약 60만 원의 변제금을 법원 에스크로 계좌로 이체하고 있다. 벌써 1년 넘게 내고 있지만 아직도 절반 이상의 기간이 남아있다. 체크카드만 사용해야 하다 보니 대중교통 카드를 충전식으로 써야 하고, 급하게 목돈이 필요할 때 어디서도 빌릴 수 없다는 사실이 늘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연체정보공유 상태는 해제되어 채권 추심 전화는 오지 않지만 신용등급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삶은 생각보다 꽤 불편하다. 가끔은 차라리 그때 어떻게든 버텨서 연체 90일을 채우고 신용회복위원회의 워크아웃을 통해 이자만 감면받는 방식으로 길게 갚아 나가는 것이 생활비 측면에서 더 여유롭지 않았을까 하는 뒤늦은 후회가 들기도 한다. 법원 서류를 챙기느라 소모했던 내 에너지와 매년 소득 증빙을 해야 하는 귀찮음을 생각하면 여전히 이 선택이 최선이었는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댓글 3
  • PC방에서 프린터로 자료 뽑는 모습이 진짜 웃겼어요. 저도 비슷한 경험 때문에 많이 당황했었는데, 덕분에 오히려 꼼꼼하게 준비하는 방법을 알게 된 것 같아요.

  • 무직으로 프리랜서 소득만으로는 워크아웃이 힘들다고 하니, 소득신고 때문에 매년 신경 쓰일 일이 생기네요.

  • PC방에서 엑셀로 정리하는 거... 진짜 답답하겠네요. 제 기억에도 그때 비슷한 상황이 있었거든요.